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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DVD]무대 공포증 (1disc)(Stage Fright, 1950)

소 비 자 가 :17,6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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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DESCRIPTION

Special Feature

Additional information

Edgar Allan Poe Awards Best Motion Picture Nominated
Locarn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National Board of Review, USA

<< 줄거리 >>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무대 공포증>은 감독 특유의 살인 범죄, 서스펜스, 반전 등을 고루 갖춘 작품이다. 다음 영화인 51년 작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이 워낙 유명한 탓에 크게 주목받지는 못한 느낌이지만 꽤 즐길만한 요소가 많은 영화임은 분명하다. 이 영화에는 같은 해의 <선셋대로>와 <이브의 모든 것>처럼 왕년(?)의 명배우인 마를렌 디트리히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앞선 두 영화처럼 연예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준 작품은 아니며, 히치콕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범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어쨌든, 20세기의 절반이 지난 시점인 1950년에 마치 앞선 반세기를 회고하듯 그 시절의 명배우들을 재등장시킨 영화들이 세 편이나 나왔다는 점은 재미있는 우연이다.

이 영화는 마지막 반전을 위해 무척 특이한 방법을 썼다. 영화의 도입부에 나오는 남주인공 조나단(리처드 토드)의 살인 사건 회상 장면이 결국 거짓이었음이 그것인데, 일반적으로 인물의 회상이라면 사건의 전말을 보여주는 정보를 보여주는 장치이며 관객은 그런 장면에 거짓이 들어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히치콕 감독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는 이 설정을 밀어붙였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좀 심하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한 영화평론가는 이 점을 매우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훗날 히치콕 감독은 <사보타지>의 폭탄 폭파 장면과 이 거짓 회상 장면을 가장 후회하는 장면이라 말했고, 그런 이유 때문에 감독은 이 작품에 애착을 갖지 않았다.

반전에 억지스러움이 있다 하더라도 영화는 시종일관 몰입 감을 준다. 남자친구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위장을 하고 샬럿 인우드(마를렌 디트리히)에게 접근하는 여주인공 이브 길(제인 와이먼)이 아버지와 함께 벌이는 소동은 긴장감과 동시에 코믹함을 선사한다. 특히, 그녀의 아버지 역할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인데, 딸을 위해 매번 기지를 발휘하던 그가 인형의 옷에 피를 묻히기 위해 자신의 손을 칼로 벨 때의 표정은 압권이다. 중반부에 벌어지는 이 유쾌한 소동이 지나가면, 후반부는 스릴러물의 섬뜩함을 보여준다. 샬롯의 남편을 살해한 사람이 조나단임이 밝혀지고 정신 이상의 그가 살기 있는 눈빛으로 이브를 쳐다보는 순간은 긴장감이 솟구친다. 무대 뒤의 어두운 곳에 두 남녀의 눈 부분에만 햇살이 들어오게 찍은 이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영화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나 <나는 결백하다>처럼 억울하게 누명을 쓴 주인공의 결백을 증명하려고 내내 노력하다가, '사실은 내가 범인이었거든.'하는 식의 다소 황당한 결말로 끝난다.

어쨌든, 이 영화는 반전의 결말에 대해 크게 기분이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면, 또 히치콕 감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영화 속 배우들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먼저 이 영화의 여주인공인 제인 와이먼은 로널드 레이건과 결혼했었고(이 영화를 찍기 전에 이혼했다), 이브와 사랑에 빠지는 탐정 역을 맡았던 마이클 윌링은 이 영화를 찍은 후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두 번째 남편이 되었다고 한다.(물론 이혼한다) 한편, 히치콕 감독은 마를렌 디트리히와는 그녀의 훌륭한 매너 때문에 영화를 찍는 동안 친하게 지냈지만, 두 남녀 주인공과는 그러지 못했다고 한다. 리처드 토드와는 왜 그랬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여주인공 제인 와이먼은 영화를 찍은 후 러프 필름을 보며 자신이 샬럿의 하녀로 나오는 부분이 너무 남루해 다시 찍고 싶어 울었다고 한다. <조니 벨린다>라는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그녀였지만, 고집 센 히치콕 감독은 이후 자신의 영화에 더 이상 그녀를 캐스팅하지 않았다.


<< 감독 >>
알프레드 히치콕
1899년 영국 레이턴스톤(Leytonstone) 출생. 본명은 알프레드 조셉 히치콕(Alfred Joseph Hitchcock). 스릴러 영화를 일관해 만들어 이 장르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연출로 말미암아 서스펜스의 천재로 불린다. 그에겐 "스릴러의 최고 거장(The Greatest Director Of Thriller)", "서스펜스 영화의 대가(The Master Of Suspense)"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는다.

양계업과 과일수입업을 하는 부모 밑에서 중류 가정에서 자라난 그는, 런던의 세인트 이그나티우스 칼리지에서 엄격한 제주이트교 교육을 받았으나 엔지니어를 지망하여 공대를 다니기도 했고, 결국은 런던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그는 완고한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잘못하면 고무막대로 체벌을 받는 엄격한 가톨릭계 학교에서 교육받았다. "어렸을 때, 아마 다섯 살 때쯤인 걸로 아는데, 아버지가 내게 쪽지를 쥐어주고 경찰서로 가라고 했다. 나는 벌 받을 걸 각오하고 있었다. 한 경관이 쪽지를 읽더니 나를 유치장에 5분 정도 가두었다. '못된 녀석들에게는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그때부터 난 경찰을 지독하게 무서워했다."라고 그는 어린 시절을 회고한다.

런던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여 광고 대리점에서 일했지만, 영국 런던에 지사를 둔 파라마운트 스튜디오에 취직하여 무성영화의 자막을 쓰는 일로서 영화계에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소도구, 편집, 각본 등의 일을 하며 차근차근 승진했다. 1922년부터 영화 감독 일을 시작하여 1925년에 〈프리주어 가든〉이라는 장편영화로 첫 데뷔를 한 이래, 화면과 화면을 결합하는 편집 기교면에서 다른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실험을 끊임없이 시도하면서 영국 무성영화의 시각적 어휘를 늘렸는데, 러시아의 몽타주 미학과 독일의 표현주의 미학을 절충한 청년 감독 히치콕의 실험 정신은 꽤 높은 평가를 받았다. 히치콕 최초의 유성영화이자 영국 최초의 유성영화였던 〈협박〉(1929) 이후 히치콕은 멜로드라마와 코미디, 뮤지컬을 오가며 다양한 장르를 찍었으며 34년부터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에 집중해서 영화를 찍었다. 이때부터 원죄 의식, 성에 대한 강박감, 위협받는 무고한 개인 등의 주제를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의 틀에서 추구하는 히치콕의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34), 〈사보타지〉(36), 〈39 계단〉(35), 〈비밀 첩보원〉(36), 〈반드리카 초특급〉(38) 등의 영화는 절묘한 카메라 테크닉, 간결한 편집, 생생한 인물묘사, 재치 넘치는 대사, 긴장을 늦추지 않는 플롯의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히치콕의 영국 영화에 주목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이 그를 할리우드로 불렀고, 로렌스 올리비에와 조앤 폰테인이 출연한 1940년 작 〈레베카〉(1940)로 히치콕은 할리우드에 무사히 입성했다.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히치콕과 50여 시간에 이르는 인터뷰를 나눈 후 그것을 책으로 펴낸 프랑수아 트뤼포는 히치콕이 미국에서 만든 영화가 영국 영화보다 더 강렬하고 성숙한 표식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히치콕은 이에 대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덜 경박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경향"이라고 대답했다.
〈의심의 그림자〉(43), 〈오명〉(46), 〈올가미〉(48), 〈이창〉(54), 〈현기증〉(58), 〈싸이코〉(60), 〈새〉(63) 등은 히치콕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의 대표작이고 현대 영화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히치콕은 제임스 스튜어트, 캐리 그랜트, 그레이스 켈리, 잉그리드 버그만, 티피 헤드렌 등 그의 영화와 더불어 기억되는 스타 배우들과 함께 영화사상 처음으로 극장 간판에 얼굴이 걸리는 스타급 감독으로 떠올랐다.
프랑스의 〈카이에 뒤 시네마〉, 영국의 〈무비〉를 중심으로 서스펜스 스릴러라는 대중적인 화술에 심오한 발언을 심는 히치콕 영화에 대한 재평가 바람이 막 일어나고 있던 50년대 후반 이후 히치콕은 〈현기증〉, 〈사이코〉, 〈새〉로 이어지는 걸작을 발표하면서 감독으로서의 전성기를 맞았다. 특히 로빈 우드는 〈현기증〉이 "영화 역사상 가장 뛰어난 다섯 편에 속하는 영화"이며 히치콕은 "현대의 셰익스피어"라고 극찬했다.
60년대 중반 이후에 만든 히치콕의 후기작들은 평판이 그리 좋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명성은 높아갔다. 마지막 작품 〈가족 음모〉(1975) 이후 은둔 상태에 있던 히치콕은 78년 이후에 공식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80년 3월 히치콕은 자신의 사무실을 폐쇄하고 영국 여왕으로부터 작위를 수여받은 뒤 죽음을 기다렸다.
74년 링컨센터 필름소사이어티가 주최한 히치콕을 위한 파티에서 건강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히치콕은 미리 준비한 답사 장면을 필름으로 보내왔다. 그것은 곧 공식석상에서 히치콕이 남긴 마지막 인사가 됐다.
"안녕하세요. 사람들은 물에 빠졌을 때 자신이 그동안 살아온 생애가 눈앞에서 번쩍거린다고 합니다. 나는 발을 적시지 않은 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어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내가 잘 다뤘던 주제는 살인입니다. 그러나 내 영화에서 살인은 주로 집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간결하고도 가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부엌 식탁이나 목욕탕에서 말이죠. 무엇보다도 나는 여러분들이 살인은 매혹적이고 즐길 만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을 확신합니다. 희생자에게조차 그렇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1980년 4월 28일 LA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나는 삐걱거리는 문소리로 서스펜스를 자아내본 적이 없습니다. 어두운 거리에서 죽은 고양이와 폐물들이 나뒹구는 것보다 밝은 대낮에 졸졸 흐르는 냇가에서 일어나는 살인이 더 흥미 있습니다."

"서스펜스가 무엇인지 알려드릴게요. 네 사람이 포커를 하러 방에 들어갑니다. 갑자기 폭탄이 터져 네 사람 모두 뼈도 못 추리게 됩니다. 이럴 경우 관객은 단지 놀라기만 할 뿐이죠. 그러나 나는 네 사람이 포커를 하러 들어가기 전에 먼저 한 남자가 포커 판이 벌어지는 탁자 밑에 폭탄을 장치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네 사람은 의자에 앉아 포커를 하고 시한폭탄의 초침은 폭발 시간이 다 돼갑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똑같이 무의미한 대화라도 관객의 주의를 더 끌 수 있는 것이죠. 관객은 '지금 그런 사소한 얘기를 할 때가 아니야. 좀 있으면 폭탄이 터질 거란 말이야!'하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 되니까요. 폭탄이 터지기 직전 게임이 끝나고 일어서려 하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말하죠. '차나 한잔 하지.' 바로 이 순간 관객의 조바심은 폭발 직전이 됩니다. 이때 느끼는 감정이 '서스펜스'라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히치콕의 영화는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 3가지 종류의 유형을 가졌다. 첫째는, 전형적인 범죄나 첩보전을 소재로 해서 그 속의 수수께끼와 스릴을 극적으로 구성한 작품들이다. 비교적 초기에 이런 작품들이 많았다. 〈39 계단〉으로부터 〈토파즈〉까지 그가 즐겨 다루었던 소재라고 하겠다. 둘째는, 평범한 사람들이 우연히 범죄나 음모에 말려들어서 겪게 되는 일상 속에 도사린 공포와 위협을 그리는 작품들이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가 그 대표적인 작품이라 하겠는데, 정신없이 쫓기는 주인공도 자신이 쫓기는 이유와 상대에 대해서는 마지막에 가서야 알게 된다. 셋째는, 이상심리를 소재로 한 것이다. 정신적인 결함이나 심리적인 원인에 의한 범죄를 주로 다루는 작품들로, 〈백색의 공포〉와 〈사이코〉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히치콕 감독은 사전에 자신의 머릿속에 완벽한 구상을 해두고서 촬영에 임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하나의 쇼트 까지도 전부 그림까지 곁들인 촬영계획을 가지고 임했으며, 촬영이 시작된다는 것은 어떤 영화로 만든다는 것이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구상이 끝나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그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불필요한 재촬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이 촬영을 끝내고 편집에 들어갔을 때에는, 꼭 필요한 장면들만 필름에 담겨있었다. 그래서 남은 필름을 가지고 재편집을 하거나 제작자나 영화사의 의견에 따라서 원래 그가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작품으로 편집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일단 편집실에 들어가면, 그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도록 촬영을 했던 것이다.
또한 그는, 배우들에게 임의의 인물 해석을 일체하지 못하도록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배우라는 것은 관객들의 정서를 촬영 세트에서 대신하는 '대용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배우들은 반드시 그가 시키는 대로만 하도록 했으며, 인물의 성격 해석은 그 자신이 이미 촬영 시작 전에 완전히 마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뛰어난 감독인 동시에 우수한 각본가, 편집자, 미술감독, 제작자이기도 했다. 특히 40년대 중반 이후에는 자신이 감독하는 작품의 대부분을 직접 제작했다. 그는 〈레베카〉, 〈8인의 표류자〉, 〈백색의 공포〉, 〈이창〉, 〈사이코〉로 5번이나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으나 한 번도 수상하지는 못하였고, 1967년에 우수 제작자에게 수여되는 어빙 살버그 상을 받았다.

그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 〈싸이코〉가 개봉된 뒤 히치콕은 어떤 남자로부터 아주 재미있는 항의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에는 '자신의 딸이 〈디아볼릭〉(54)을 본 뒤부터 목욕을 하지 않으려하더니 〈싸이코〉를 보고나서 샤워도 하지 않는다.'고 적혀있었다. 히치콕은 그 남자에게 간단하게 답장을 써서 보냈다. "드라이클리닝을 하시죠."

그가 〈새〉와 〈마니〉에 출연한 스타 티피 히드렌의 딸인 어린 멜라니 그리피스에게 선물을 했는데, 그것은 모형 관 속에 그녀의 엄마인 티피 히드렌을 닮은 인형이 누워 있는 것이었다. 이에 격분한 티피 히드렌은 더 이상 그와 작업하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한다.